언니가 제 생일에 사줬던 샤넬지갑을 잃어버렸어요
사실대로 털어놓자니 미안해서
언니 모르게 다시 사려고 보니 문제는 돈...
‘에효...그래..뭐..이거 안들고 나간지도 꽤 됐는데 뭘~’
애써 위로하며 이걸 팔았네요
알아보니까 이런 중고명품가방을 가격 많이 받고 팔려면
연식이 짧을수록 좋다했거든요.
빨리 팔아서 조금이라도 더 받고픈 맘뿐이었는데
장애물이 좀...많았네요
매장들 네 군데나 돌고 개인거래도 실패하고서야
바로 사주는 데를 만나 단숨에 팔 수 있었어요 휴
벨벳에다 색깔도 고혹적인 청록색이라 진짜 예뻤는데
상태도 보다시피 꽤 좋았기 땜에
첨에 인터넷에 이거 사진만 올려놔도 사갈 사람 생길 줄 알았거든요
가격 높게 받는데 큰 역할 한다는
부속품도 다 챙겨놓은 채로
인터넷에다가 이거 팔고 싶다고 글을 썼는데요
내부사진이니 뭐니 다 올리래서 이렇게 다 찍어올렸건만
오는 연락은 [가격네고부탁요~~] 뿐
와중에 진짜 살 듯이 굴던 사람들도
돈 다는 못 드릴 것 같다며 월마다 입금해드리겠다고...ㅎㅎㅎ
더 이상 팔리길 기다릴 수도 없고
바로 이거 사줄 만한 곳을 찾아 나섰죠
중고명품가방인데 이렇게 각 반듯하기 있기 없기....
이 정도면 분명 잘 팔 수 있을 거라 여기며
검색해서 사이트들 뜨는 것마다 다 들어가봤는데요
보니까 중고명품가방들 바로 사주기도 하고
위탁 맡기는 것도 된다는 곳들이 많더라구요
그래서 직접 가봤는데...다 허탕
사이트에 적어놓은 얘기랑 실제는 완전 다르던데요?
그 누구도 바로 사주려 하질 않았고
저더러 위탁 맡기라고만 계속 그랬네요
뒷면 하트까지 봉긋했던 내새끼...
언제 팔릴 지 모르니 위탁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
왜 절대 바로 안 사주려 했던 걸까요?
분명 제가 전에 찾아봤던 내용으로는
중고명품가방 가격 매길 때 연식이랑 상태랑 부속품이 중요하댔고
제 껀 그 세가지 조건이 다 충족된 상황이었는데도
“아 이게 시세가 너무 낮게 잡혀있어서
지금 파시면 드릴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요ㅠㅠ” 하면서
안타까운 척을 해대더라구요
나중에 보니 “위탁은 별로세요? 저희가 비싸게 팔아드릴 수 있는데...”
란 말을 꺼내기 위한 밑밥이었지만요
중고명품가방을 무슨 수로 비싸게 팔겠다고...
시세는 또 뭔 놈의 시세구요...
중고명품가방에 시세가 있단 말은
제가 애지중지 보살핀 이 아이랑
흙탕물에 뒹군 (예를 들어서요) 상태 최악인 애랑
같은 가격이란 거?
이건 아니지 싶어서 잘 알겠습니다~~ 하고
나와서 바로 실체 파악에 들어갔죠
안감까지 실키실키했던 제 가방....
찾아보니 역시나 중고명품가방에 시세라는 건 아예 없었고
위탁을 맡겼다가 잘 판 사람도 없더라구요
위탁 맡긴 사이에 매장 안에서 감쪽같이 짝퉁으로 뒤바뀌어
짝퉁을 돌려받았단 분들 보곤 진짜 경악
그거야말로 도둑질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가 있지ㅜ
위탁 맡겼던 가방이 하도 안팔려서 받아왔더니 각이 다 무너져있고
악취가 풍겼다는 사람도 있었어요
고객 기만이 도가 지나치니 화가 막 솟구치더라구요
위탁은 절대 안돼! 못해! 다짐한 뒤
이걸 바로 팔 수 있는 곳을 다시 찾아봤어요
눈 빠지게 찾다가 마침내 발견!!
빛의 속도로 뛰쳐나갔답니다
도착한 곳은 이 강남 압구정 도산대로 앞!
가면서도 내심 신기했어요 어떻게 평당 몇 억씩 호가하는
금 땅 위에 매장이 있을 수 있지? 하구요
근데 가서 보니까 그럴만 하더라구요
위탁 제안 전혀 없이 바로 사주는 곳으론 여기가 유일한데도
굵직굵직하게 감정가 내어 준다네요?
지방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데
다들 택배로 보내서 팔 정도라고 하는 거에요
센스 있게 택배비는 매장서 다 내준대고... b
여기가 제가 갔던 .캉,카.스, 라는 곳이에요
심지어 여긴 건물도 이렇게 대왕급으로 컸답니다
명품가방 감정가가 얼마든
턱턱 내줄 것 같은 부내가 풍기더라구요
번쩍번쩍하는 로비도 로비지만 가방 팔려는 사람들이
이렇게 많다니...
감정가 좋단 소문을 듣긴 했는데
이정도 인기란 말이야?!
제 감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답니다
따로 마련돼있는 매장엔 가방, 지갑, 시계, 주얼리 등등이
쫙 깔려 있었거든요
전문가에게 가방을 드리니 금방 감정이 끝났어요
역시 풍문으로 들은 바대로 금액이 상상초월로 높아서 바로 오케이~
입금도 5분도 안 걸렸어요
진작에 이렇게 바로 팔걸 멋모르고 위탁 맡겼음
이것보다 더 깨끗하고 산지 얼마 안된 가방들이
중고시장에 들어오는 순간! 제 가방은 눈에 띄지도 못하고
더 잘난 가방들 밑에 깔려주는 신세만 되는 거잖아요
그렇게 팔리지도 못하고 위탁 기간만 채우다가
결국 상처투성이인 채로 받을 제 모습이 눈에 선하더라구요
샤넬지갑 사고도 돈 넉넉할만큼 잘 팔았겠다,
구사일생이 이런 거겠죠?